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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VR) 기술은 더 이상 게임 속 세계나 실험실의 산물이 아닙니다. 메타버스, VR 커뮤니케이션, 원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현실의 연장선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몰입형 디지털 공간이 일상이 되면서, 가상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 행위 또한 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비물리적, 비대면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존 법체계로는 명확한 처벌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본 글에서는 가상현실 범죄의 실제 사례와 유형, 책임 소재, 법 해석상의 쟁점과 입법 방향까지 다각도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가상현실 범죄의 법적 기준 (VR사건, 책임소재, 법해석)

 

가상현실 속 범죄 유형과 사례

가상현실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실제 현실의 범죄와 유사한 형태를 띠지만, 공간적·물리적 제약이 없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피해의 실체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은 실제와 다를 바 없고, 일부는 현실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성적 희롱과 같은 성범죄 유형입니다. 2021년 미국의 한 여성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해당 플랫폼은 '퍼스널 버블' 기능을 도입해 아바타 간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조치했지만, 이후 유사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었습니다.

또한, 협박이나 명예훼손 같은 언어적 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상 공간에서의 익명성과 비대면 특성을 악용해 타인의 아바타를 집단적으로 괴롭히거나, 음성채팅을 통한 폭언과 욕설을 퍼붓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특정 아바타를 실명으로 지칭하면서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현실에서 법적으로 충분한 처벌 사유가 됩니다.

게임 내 거래 사기나 아이템 탈취와 같은 재산범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NFT나 디지털 자산이 결합된 게임에서는 가상 아이템의 금전적 가치가 실제와 연결되므로, 사기행위가 실제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이를 단순한 '게임 내 행위'로 간주하며 명확한 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법적 책임소재: 현실 vs 가상

가상현실에서 발생하는 범죄 행위를 현실의 법률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세 가지 핵심 쟁점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가상 공간에서 발생한 행위가 형법상 범죄로 성립할 수 있는가. 둘째, 가상 공간에서 발생한 정신적·심리적 피해를 법적 피해로 인정할 수 있는가. 셋째, 플랫폼 운영자의 관리 책임과 법적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입니다.

우리 형법은 원칙적으로 물리적 현실에서 발생한 결과를 중시합니다. 예컨대 폭행죄는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이 있어야 성립하며, 명예훼손은 불특정 다수에게 사실을 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VR 공간에서는 이러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아바타 간 신체접촉이 실제 물리적 행위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는 현실과 같은 충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법적 피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정신적 고통이나 경제적 손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 대부분은 "가상일 뿐인데 왜 신경 쓰느냐"는 사회적 시선에 가로막혀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정신적 충격을 명확히 입증한 사례를 중심으로 일부 법원이 손해배상이나 처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플랫폼은 단순한 기술 제공자인가, 아니면 사용자 보호 책임을 지는 관리자인가에 따라 법적 지위가 달라집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DSA)’를 통해 플랫폼 운영자에게 콘텐츠 모니터링과 사용자 보호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한국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기준 정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해석과 입법의 과제

가상현실 범죄를 둘러싼 법적 해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현실에 기반한 기존 법체계는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법적 해석과 입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우선, ‘법적 주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현실에서는 자연인과 법인이 법적 행위 주체로 인정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아바타라는 존재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표현 수단이면서도 독립된 행동 주체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지위 정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피해 판단 기준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가상공간에서의 언어폭력, 사이버 스토킹, 아바타 성희롱 등은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이 실제와 유사하거나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비물리적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 마련이 시급합니다.

입법적으로는 전통적인 형사법 외에도 민법,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다양한 법률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어떤 경우 현실에서 처벌 가능한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미성년자 보호, 성범죄 예방, 디지털 자산 보호 등의 분야는 긴급한 입법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관련 전문가들이 포함된 법률위원회를 운영하며, 메타버스 내 법적 이슈를 연구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구조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결론

가상현실 속 범죄는 기술이 앞서고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회 현상입니다. 실제 피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법적 공백으로 인해 처벌이 어렵거나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VR 공간도 ‘현실의 일부’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반영한 새로운 법적 기준과 해석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사용자들도 가상공간에서의 행위가 현실에서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플랫폼은 사전 예방적 조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협력해 윤리와 법이 균형을 이루는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